부끄러움

Posted 2016. 2. 19. 05:06



지난 주 지인 한 분께서 하늘나라로 떠나가셨습니다.


어떤 분이셨냐고요?

 

사실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사진 한 장 본 적도 없고

전화 통화도 한 번 해 본 적 없고

사는 곳도 대강 어느 동네라는 정도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아는 사람이냐고요?

네에제 블로그 이웃분이세요.

 

저한테 '이웃님'들은 오랜 친구같은 분들이십니다.

 

어떤 이웃분들은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부터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시고 지금까지 계속 꾸준하신 분들도 있고요

어떤 분들은 한동안 서로 신나게 서로의 포스팅에 댓글을 달다가 요즘은 뜸해진 분들도 있고요

아예 이웃만 맺고는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는 분들도 있어요

 

서로 왕래가 없으면 없는대로 좋고...

서로 자주 들러 안부를 물을 수 있으면 더 좋은 그런 분들이죠.

 

저와 고인과의 교류는 그닥 길지는 않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사는 관계로 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거의 모든 분과는 멀리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고인과 그 동생분은 우연히도 제가 사는 곳과 그닥 멀지 않은 곳에 계시는 분들이었죠

 

이웃사촌이랄까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셨지만왠지 힘이 되어주시는 분들이셨죠

 

특히 고인께서는 제 포스팅에 살가운 맞장구를 쳐 주시는 분이었고요

직접 화장품을 만들기는 만들어 보고 싶은데맘처럼 안된다고 하시기도 했고요

 

한번은 자기가 증류기를 구입했는데화장수용 하이드로졸을 많이 뽑았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저에게 나눔을 해 주시겠다고까지 제의를 하셨던 일이 기억나네요

제가 좀 낯을 가리는 지라 마음만 감사히 받긴 했습니다만

 

그러던 중 작년에 갑자기 몸이 안좋아지시고 암판정을 받으셨어요.

그것도 시한부 판정입니다.

 

입원과 몇 번의 고비를 넘기시고는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안부를 물으러 동생분의 블로그에 갔더니 오랜 투병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공지를 보았습니다.

그것이 지난 주의 일입니다.

마음 아프고 한 구석이 답답해 지더군요

 

엊그제 갑자기 정말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기도 뿐 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들 보다도 해 드리고 싶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제 블로그에 한 번 해보기는 해야겠는데…’라는 글을 몇 번 올리신 분이라힘 내시라고 한 번 만들어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 글을 쓰는 데도 가슴이 먹먹해 지네요...

 

조금만 더 이따가

지금은 이것만 하고

나중에

다음에

다음 주에

다음 달에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가시기 전에 로션 하나 만들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제 정성을 넣은 간단한 로션 하나크림 하나 만들어 드리지 못한 게 너무 맘에 걸립니다.

 

수제 화장품 어쩌구 하는 블로그를 쓰고 있으면서도

아픈 분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도 못하고

잠깐의 번거로움 때문에 게으름을 부리면서

제가 과연 여러분이 읽으실 만한 글을 쓰고 있기는 했었는지 부끄럽습니다.

 

가르쳐 드려요…’, ‘알고보면 쉬워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아는 척멋있는 척 하고 있었던 거 생각해 보니 부끄럽고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2016년은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 많아지는 한 해인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도 사실 써 놓고 올릴까 말까 잠깐 걱정을 했었습니다.


일단은 저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 쓴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가족분들이 포스팅을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어서 입니다.

 

혹시라도 가족분들께서 이 글을 읽으시더라도 마음 상하지 마시고

그저 제가 고인께 죄송한 마음을 적은 것이라 생각해 주세요


앞으로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아픈 사람들어려운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작단장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젠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saytolove님께서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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